한 레즈비언 아줌마의 넋두리.txt

“30대와 40대 게이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업소를 망하지 않게 하고 꾸준히 새로운 가게가 더 생길 수 있도록 소비를 할 만큼 돈을 번다. 그러나 레즈비언들은 40대, 적어도 30대 레즈비언을 만날 장소조차 없다. 이것은 레즈비언들에게 ‘종로’가 없어서가 아니다. 갑자기 100개의 업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 해도, 다음 달이면 다 망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즈비언은 그 업소들을 먹여 살릴 돈이 없기 때문이고,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레즈비언으로서’ 소비할 준비가 된 30대부터 40대의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레즈비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성의 문제다.” -인터넷에 떠도는, 앞으로도 영원히 떠돌 글 ‘레즈비언 클럽이 구린 이유’ 중

(팩폭은 언제나 아프다)



혹시 90년대 중후반 신촌 놀이터 기억하는 사람? 산타페 아는 사람?

그 시절 칼머리하고 워커 신고. 담배피우던 무리 중에 하나였다 나는.

부치행세 하다 남자한테 폭행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삐끼 텃세에 이태원 대로변도 무서워서 못 걸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이민와서 결혼까지 한 지금 이게 왜 갑자기 생각나냐면..

20년 세월이 넘어도 여전한. 그 시절 아련한 사람들 때문이다.



난 당시에, ‘여성’의 역할에 갇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어서 화가 난 상태였다.

뒤돌아보면 그건 사회적 억압과 내 성정체성, 썩 불행했던 가정사 등등이 섞인 결과였다.

어렸을 때야 우리편 vs. 니네편으로 모든게 단순했지만. 돌아보면 그건 결코 단순치 않았다.

사람 일이 얼마나 복잡한 건데. 하지만 그 때는 상관없었다.

내 정신적 불행을 잠시나마 외면하는 데 ‘사상’만한 게 없었으니까.

일단 겁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 오빠와 차별대우하는 부모가 싫었고, 너무 일찍 자각한 내 정체성이 싫었고,

내가 짊어진 짐을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세상이 싫었고. 기타 등등. 모든게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면 간단했다.

근데 돌아보면 그냥 이런 생각이 드는거. 그게 뭐? 내가 불행한게 내 주변 개인들 탓인가?

IMF때 폭삭 망한 부모가 나 미워서 날 내보냈을까? 오빠는 잘 되고 나 망하라고 등록금 안보태줬을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굳이 호모포비아라서 날 외면했을까?

나에게 겹쳐진 불행들이 어떤 한 사람, 한 집단의 탓인가? 울분을 토하면 그게 사회운동인가?

하지만 그 때, 그쪽 집단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거의 절대 다수의 내 문제들은 사실 ‘우리편 vs. 니네편’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걸.

나를 둘러싼 상황은 더럽게 복잡한데, 이게 단순히 ‘여성의 억압’이라는 필터로 단순화되었을 뿐이라는걸.

난 내가 20년쯤 젊었더라면 요즘 흔한 애들처럼, 깨어있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느닷없이 이 자아성찰을 하게 된 이유는,

‘한국남자’에 대한 어떤 공포심, 열등감, 약오름, 혐오를 빙자한 질투 내지는 부러움, 이런 감성들이 지배적이었던 그 때 그 사람들이 촤라락 생각났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지난 2-3년 폭발했다고들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오래된 추억의 한 페이지다.

단언컨대, 지금 유행하는 모든 신조어, 구호, 공적 활동, 정서, 분노를 표출하는 방향 등은 최소한 30년은 묵은 것들이다.

그리고 골때리게도. 그 때 우리편 vs. 니네편으로 갈라 놀던 그 궁상맞던 레즈비언 소굴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본인들의 분노와 뒤섞인 감정을 서로서로 돌려보며 안심하고, 다른 집단으로 가 분탕질을 하고,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사회 부조리의 책임을 떠넘긴다.

그리고, 집단 내의 그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명실공히 레즈 전문분야인 그 끔찍한 조리돌림을 당하기 싫다면.

다시 반복하자면, “이것은 레즈비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성의 문제다.”



게이들은 지들끼리 잘 논다. 난 이게 너무 부럽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Pride parade를 할 때면 어딘가 울컥한다. 게이들 돈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다.

어딜가나 게이들은 자기들끼리 사귀고, 사업을 차리고, 구역을 만들고, 서로 모이고, 사회적 억압에 툭툭 털고 일어나 서로서로들 위로하면서 잘 산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남자’가 무슨 엄청난 사회적 이득이라도 누릴거라 생각할 만큼 어리다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남자’는 그냥 원래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걍 산다.

게이들이 일반남을 ‘전향’시키려고 하던가? 일반 커뮤니티에 잠입해서 여성혐오를 꼬득이던가, 아니면 여론 조작을 하던가? 일반들 ‘미러링’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던가? 아니다. 그저 자기들이 처한 환경 안에서 재미있게 잘 산다. 그런데.



레즈는 이게 안된다. 성격 뒤틀린 이 불행한 여자들 절대다수는 서로의 감정을 매만질 수 없다. 본인의 불행을 갑옷삼아 구호를 외쳐대는 ‘우리편 니네편’ 컨텐츠를 소비하며 잠시 즐거울 수는 있겠으나, 90년대 그랬듯이, 금방 밑바닥이 드러난다.

사이비 종교가 딱 이 테크를 타며 망하던가?

그래서인지, 내가 평생 보아온 레즈들 대부분은 겁나 불행했다. 본인의 불행을 ‘해결’하려는 내부의 의지 대신에, 잠깐 ‘외면’하려는 외부의 자극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그 사람들 모습을 여초 커뮤니티 글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목격하고는 한다.

세상이 우리편 vs. 니네편으로 칼같이 나뉜다면 세상 얼마나 속편할까.

한 집단이 진짜로 모두 똑같은 믿음/사상/지위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알기 편할까.



세상사람들 모두가 각각의 맥락을 갖고 있는, 애새끼들이 이해하기에는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들에

이 늙은 레즈 집단들이 뛰어들어 온갖 노하우가 쌓인 분탕질을 시연해 내었다.

실력을 그간 어찌나 갈고 닦았는지 기가 막힌다.

하지만 그 단순무식한 본질에는 항상 ‘우리편 vs. 니네편’이 있다.



24시간 내내 끊임없이 남자에 대한 열등감으로 바글바글 끓어오르지 않았다면

결코 생각해 낼 수 없었을 발상을 동원하여,

탈코르셋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널린 외모에 병적으로 의존하는 풍조를,

여자가 기분나빠할 만한 사건 하나(anecdote)을 넘어 미디어에 노출되는 폭력(context)을,

여자가 피해자로 알려진 한 범죄(anecdote)를 넘어 시민들 모두의 안전과 인권(context)을 슬쩍 외면하고는,

이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언제나 본인들의 일차원적 놀이에 부합하도록 바꾸어버린다.

이 단순화가, 스스로 엄청난 불행을 이겨내고 있다고 믿는 어린 세대들에게 어찌나 효과적인지,

어린 친구들이 이 안타까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재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의 의견을 교환하는 건 당연히 금기에 가깝다. 카리스마 쩔던 90년대 신촌 레즈 담배쟁이들이 놀던 그대로.



난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 탓 안하고 열심히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집단에 뭔가가 구리다면 투자하고, 고쳐내고, 의견을 모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레즈비언 바는 2018년 오늘도 여전히 구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여자’ 탓을 한다.

정말? ‘경제활동을 하는 레즈비언이 없다’고? 그 모든게 다 본인들이 ‘여성인 탓’이라고?

마음 한구석 어딘가 본인들도 알고는 있겠으나, 그건 본인들이 미친여자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탕질의 성공으로, 이제 한국 여성들은 원래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편견에 더하여,

본인들이 미친여자가 아니라는 증명 까지 따로 해야만 한다.

한때 동지로서, 여전히 레즈지만 더 이상 동지는 아닌 사회인으로서, 축하하고 싶다.

30여년간을 구리게 버틴 당신들 기획의 대 성공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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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결국 탈출은 지능순이야
ㅔㅔ
으 ㅅㅂ 고딩때 내 짝꿍이 레즈였음 그때아이돌 게이소설읽으면서 레즈들 많이 번성함 종나 드럽네 미친 지금 어느덧 30대 남자랑 결혼해서 과거 숨기고 산다는 소문이 ㄷㄷ
ㅁㅁ
게이는 남자를 사랑해서 된다면 레즈는 남자를 혐오해서 된다는 말이 떠오르네
ㅇㅇ
뭔 개소리야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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